오늘 아침, 4월이 되면 꼭 찾게 되는 블로그 하나를 보며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2026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앞두고 평범한 커플이 1년 동안 틈틈히 손수 만든 5만 개의 노란 리본을 나눈다는 소식이었어요. 유가족도, 특별한 단체 소속도 아닌 그들은 그저 ‘잊지 않기 위해’ 이 일을 계속해왔습니다. 그들의 블로그에는 ‘당연시 요구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지난해 나눔 후 남은 금액으로 라면과 생수, 연탄을 기부한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정치적 상징일 수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노란 리본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그리고 ‘다시는’이라는 바람이 담긴, 순수한 기억의 표식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공공장소에서 그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그날을 기억하며 묵묵히 리본을 만들고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노란 리본을 둘러싼 우리의 기억과 망각
세월호 노란 리본은 단순한 추모의 상징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떻게 기억하고, 또 어떤 기억을 지우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되어왔습니다. 2017년 광화문에서 받은 리본이 금방 닳아버려 아쉬웠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직접 룰라끈으로 더 오래 남을 리본을 만들기도 했죠. 재미있는 점은, 그렇게 만든 리본을 보며 제 아이가 유튜브에서 ‘모두의 이름을 불러주는 노래’를 찾아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그 노래가 뭔지 잘 모르지만, 분명 무언가 중요한 기억과 연결된 상징이라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기억과는 달리 공적인 공간에서는 리본이 점점 사라지거나 지워지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2025년, KBS 뉴스는 대통령 부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취재기자의 노트북에 부착된 세월호 리본을 모자이크 처리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주요 자막이 가려지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 사건은 리본이 단순한 ‘개인의 추모’를 넘어 어떤 정치적·사회적 의미로 해석되고, 때로는 억압되는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태극기가 특정 진영의 상징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와 대비되는 것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택이었습니다. 방한 당시 세월호 유가족에게 받은 노란 리본을 정치적 중립을 우려하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달고 공개 석상에 섰죠. 그는 “인간의 고통 앞에서는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한 마디가 노란 리본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정치적 진영을 가르는 표식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마땅히 함께 아파해야 할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12주기를 맞아 되살아나는 시민의 손길
공식적인 추모의 공간이 좁아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은 또 다른 희망을 보여줍니다. ‘개구리공장’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평범한 커플의 이야기가 대표적이에요. 그들은 10년 넘게 세월호 주기를 맞아 손수 리본을 만들어 무료로 나눠왔습니다. 12주기에는 무려 5만 개를 준비했는데, 학교에 4만 개, 개인 신청자에게 1만 개를 배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나눔은 매우 체계적입니다. 학교 신청과 개인 신청을 구분하고, 택배비는 후불로 받으며, 모든 재료비와 비용을 공개합니다. 특히 학교 신청의 경우, 학생 수만큼 리본과 함께 기억을 새기는 스티커를 동봉해 보내 학생들과 선생님이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사업자가 아닌 개인’이라 밝히며 학교 예산으로 결제가 안 되는 점을 미리 알리는 등 소소하지만 중요한 배려를 잊지 않습니다.
나눔의 규모가 커지면서 생기는 부담도 있습니다. 블로그에는 “말 한마디에 상처받을 수 있다”는 당부의 글과 함께, 지난해 택배비를 입금하지 않은 분들에 대한 부탁도 올라와 있었어요. 모든 것이 자발적인 기부와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받는 입장에서의 기본적인 예의가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기억이 실천이 될 때
이 커플의 활동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나눔을 넘어선 실천입니다. 지난 11주기 때 리본 배송 후 받은 택배비 외 추가 금액을 모아 여러 곳에 기부한 내역을 상세히 공개했는데요, 그 내용을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날짜 | 기부처 및 내용 | 금액 |
|---|---|---|
| 2025.5 | 서울 강동구 암사동 ‘마을밥상’ 무료급식소 라면 후원 | 100,000원 |
| 2025.5 | 서울 강동구 둔촌동 ‘강동꿈마을’ 보육원 라면 후원 | 110,000원 |
| 2025.8~9 | 서울 강동구 암사동 ‘마을밥상’ 무료급식소 생수 1,000개 후원 | 147,800원 |
| 2026.2 | 인천 학익동 연탄 304장 후원 (세월호 희생자 304명) | 273,600원 |
| 2026.2 | 인천 학익동 연탄기부 곡식꾸러미 10세트 후원 | 90,000원 |
| 2026.2 | 인천 학익동 연탄 159장 후원 (이태원참사 희생자 159명) | 143,100원 |
총 721,400원의 금액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들의 이름으로’ 고스란히 다른 이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쓰였습니다. 세월호의 기억이 이태원 참사의 기억과 연결되고, 무료 급식소와 보육원을 위한 도움으로 이어지는 모습에서 ‘기억하기’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 단순한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연대와 실천으로 발전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노란 리본을 이야기하는 이유
노란 리본에 관한 이 모든 이야기들을 되짚어보면, 결국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권력에 의해 모자이크 처리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며 색이 바래기도 하며, 공공장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그 상징을 왜 여전히 되살리려 애쓰는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 리본이 단지 2014년 4월 16일의 비극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은 국가가 책임을 다해야 할 순간에 방치된 모든 이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진실보다 편의를 선택하는 권력에 대한 경계의 표식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인간의 고통 앞에서는 중립이 있을 수 없습니다. 리본을 다는 것은 특정 정치적 입장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개인의 작은 결심입니다. ‘개구리공장’ 커플의 나눔은 그러한 개인의 결심이 모여 어떻게 구체적인 따뜻함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그들의 블로그에는 신청 폼이 올라와 있고, 많은 이들이 그 링크를 통해 기억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4월이 되면 가방에, 책상에, 혹은 마음에 작은 노란 리본을 달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것이 유행이 되어서가 아니라, 잊혀져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요. 기억의 방식은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리본을 신청하는 것, 만들어진 리본을 나누는 것, 혹은 단지 그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까지 모두 소중한 실천입니다. 당신의 기억과 실천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