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 세월이 지나야 알게 되는 이유

며칠 전 피아노를 치다가 문득 스승의 은혜라는 곡을 연습하게 되었어요. 반주 패턴이 8분음표로 쪼개져서 조금 까다롭긴 했지만, 오른손 멜로디가 참 예뻐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주를 하면 할수록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고3 때 담임선생님이셨어요. 학창 시절에는 그저 무서운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때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제 인생을 붙들어 주셨더라고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야 스승의 은혜를 깨닫는 걸까요? 오늘은 스승의 은혜에 대한 제 경험과 생각을 나눠보려고 해요.

참고자료에 나온 에세이를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7남매 중 둘만 중학교 이후 교육을 받았다는 이야기, 가난 때문에 형제들이 일찍 객지로 떠난 이야기, 그리고 가정방문 날 낡은 시골집이 그대로 드러난 창피함까지.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 글이 참 와닿았습니다. 저희 집도 형편이 어려워서 저는 의무교육 덕에 중학교까지 겨우 다녔고, 고등학교는 시골에 있는 학교를 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저를 가르쳐 주신 송민석 선생님은 윤리 선생님이셨고, 월남전 참전 용사셨어요. 첫인상은 인자하셨지만 어딘지 날카롭고 타협하지 않는 선비 같은 분이셨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분의 눈빛이 생생해요.

스승의 은혜를 떠올리게 하는 학창시절 교실 풍경과 선생님의 따뜻한 모습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날은 가정방문 날이었어요. 쓰러질 듯 낡은 시골집, 삐걱거리는 마루, 홀로 집을 지키던 저. 선생님은 낮은 방문을 허리 숙여 들어오셔서 저와 나란히 안방에 앉으셨어요. 방 벽은 흔들려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웠지요. 그때 선생님이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어디 누구 집 냄새랑 닮았네.” 그 ‘누구’는 저와 형편이 비슷한 반 친구였어요. 그날은 정말 창피해서 땅에 파고들고 싶었지만, 그 이후로 선생님은 저를 몇 번이나 댁으로 데려가 점심을 먹여 주셨어요. 어느 날은 ‘청석’이라는 마을까지 함께 버스를 타고 가서 자갈이 널린 바닷가를 걸으며 따뜻한 응원의 말을 건네 주셨지요. 그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런 순간들이 바로 ‘스승의 은혜’라는 말로는 부족한, 진짜 은혜인 것 같아요. 그분은 제게 단순히 지식을 가르친 게 아니라, 가난이라는 부끄러움을 감싸 안아 주셨어요. 그때의 가난은 제게 부끄러움이 아니라, 스승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이었던 거죠. 참고자료에서도 비슷한 표현을 봤어요. “마음공부를 하며 깨닫습니다. 그때의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스승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이었음을.” 이 말이 정말 마음에 와닿았어요.

대학 입시와 선생님의 동행

대학 입시는 학력고사 시절이었어요. 저는 주제도 모르고 대학에 가보고 싶었지만, 원서를 쓰고 원서비를 낼 돈조차 없었어요. 누나에게 이야기해도 반응이 냉랭해서 서러움이 오래 남았습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서울로 시험을 보러 갈 때, 담임선생님이 동행을 해 주셨어요. 당신 처제댁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기까지 했지요. 시험 당일, 교통체증으로 시험을 놓칠 뻔해서 차에서 내려 택시를 잡고 선생님과 함께 헐레벌떡 뛰어 시험장에 도착했어요. 그렇게 겨우 시험을 치렀습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선생님이 저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해 주셨는지 나중에야 알게 됐어요.

대학 합격 후 어느 날, 학교에서 누군가 나를 찾는다고 해서 계단으로 나갔더니 반갑게 맞아 주시는 분이 바로 담임선생님이었어요. 수많은 제자 중 한 명에 불과한 저를 잊지 않고 찾아주셨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남았습니다. 그 후 여수에서 교감 선생님으로 계실 때 한 번 찾아뵌 것이 마지막이었어요. 지금까지 찾아뵙지 못한 저는 참 못난 제자입니다. 동창 중에는 결혼식 때 주례를 부탁했다는 이도 있고, 학창 시절 선생님을 싫어하던 친구들이 오히려 자주 연락을 이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스스로가 한심해지기도 해요.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선생님의 계정을 발견했습니다. 연로해지신 모습이었지만, 수필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어요. 연락해 용서를 구하고 은혜를 갚고 싶었지만, 사회적·경제적으로 당당하지 못하다는 생각 앞에서 저는 늘 머뭇거렸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어요. 내 인생의 참된 선생님은 바로 그분이었다는 것. 가끔 올라오는 선생님의 사진을 볼 때면 가슴이 시리고 그립습니다.

스승의 은혜를 노래로, 영화로 만나다

요즘 피아노를 독학하면서 스승의 은혜라는 곡을 연습하고 있어요. 지난 시간에는 4분음표 반주 패턴이었는데, 오늘은 8분음표 단위로 쪼개진 버전이라 난이도가 좀 올라갔어요. 특히 3:2 리듬(셋잇단음표와 2분음표의 조합)이 나오는 부분이 까다로워서 메트로놈을 켜고 한참 연습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곡을 칠 때마다 선생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마도 그때의 감사한 마음이 음표 속에 녹아 있어서 그런가 봐요.

재미있는 점은 스승의 은혜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다는 거예요. 2006년에 개봉한 청불 공포 스릴러인데, 학창 시절의 상처와 교사에 대한 복수심을 다룬 작품이더라고요. 저는 아직 안 봤지만, 줄거리를 보니 선생님과 제자 관계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해요. 물론 제 경험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지만, ‘은혜’라는 단어가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스승의 은혜 피아노 악보에 관심 있으신가요? 제가 연습하는 악보는 한결님이 만든 쉽고 멋진 버전인데, 왼손 반주가 4분음표와 8분음표 두 가지 버전으로 제공돼서 초보자도 도전하기 좋아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 보세요.

이제야 깨달은 진짜 은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스승의 은혜는 그 순간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 삶이 무거워질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거예요. 지금 저는 마음공부를 하면서 깨닫고 있습니다. 성공한 후에야 은혜를 갚겠다는 오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오늘 하루 내가 받은 은혜를 발견하는 것부터가 진짜 공부임을 믿습니다. 선생님, 이제야 제 안의 ‘상(相)’을 깨고 당신의 은혜를 온전히 마주합니다.

언젠가는 꼭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하며 말하고 싶어요. “선생님, 그때 저를 사람으로 대해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직 용기가 나지 않지만, 이번 스승의 날을 계기로 연락을 드려볼까 생각 중이에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언제, 어떤 순간에 스승의 은혜를 떠올리게 되었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함께 나누면 그 은혜가 더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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